별주부가 '호 선생'을 부른 이유는?
2021-02-15

요즘 눈여겨보는 유튜브 동영상 하나가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만든 홍보영상인데요. 고전과 현대의 접목을 통해 한국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까지 사로잡은 영상이 있습니다. 이날치 밴드와 앰비규어스댄스 팀이 콜라보해 만든 한국 관광 홍보 영상입니다. 최근 TV 광고까지 찍으며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유산으로만 여겨졌던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오늘은 이들의 노래 중 ‘범 내려온다’를 살펴보며 수궁가 및 판소리에 좀 더 가까지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별주부가 ‘호 선생’을 부른 이유는?

 

 

 

수궁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설 별주부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이 병에 걸립니다. 하지만 어떤 약도 용왕의 병을 고치지 못합니다. 이때 세 명의 도사가 나타나 토끼의 생간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약을 구하려면 육지로 나가야 하지만, 한 번도 뭍으로 나가지 않은 대신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지만 충성심이 강한 별주부(자라)는 달랐습니다. 그는 토끼의 그림을 가지고 용감하게 육지로 나섭니다. 결국 토끼는 용궁까지 오게 되지만, 꾀를 써서 다시 육지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후 별주부를 안타깝게 여긴 산신령이 약을 줘서 용왕을 살리는 결말도 있습니다.

 

범 내려온다별주부가 용궁에서 나와 육지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등장합니다. 산에 오른 별주부는 ‘토 선생’(토끼)을 부릅니다. 하지만 턱에 힘이 빠져 ‘호 선생’(호랑이)으로 잘못 발음하게 됩니다. 평소 흉폭한 성격 탓에 산짐승들에게 인기가 없던 ‘호 선생’은 신이 나서 산을 내려옵니다. ‘범 내려온다’의 가사를 보면, ‘누에 같은 머리를 흔들며 양 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이라는 부분이 나타납니다. 호 선생 즉 호랑이의 생김새를 생각해봅시다. 큰 머리를 흔들며 꼬리를 부풀린 채 별주부에게 다가오는 커다란 호랑이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생각나지 않나요?

 

물론 범 내려온다의 인기가 이런 이야기적 요소로만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노래와 어울리는 악기의 소리, 도깨비를 연상시키는 춤동작도 사람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은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판소리 가사의 내용이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였다면 이런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떤 콘텐츠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공통 요소를 찾아보면 원천 콘텐츠의 우수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범 내려온다의 원천 콘텐츠인 판소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판소리 정체를 밝혀랏!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발생한 대중 예술입니다. 재미난 이야기와 노래, 춤이 어우러진 조선시대 뮤지컬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판소리가 발전한 이유는 임진왜란으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면서 백성들이 문화의 주체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조선 전기는 양반 사대부들이 문화를 주도하였기에 유교적 관념이나 강호한정을 노래하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서, 백성들의 경제력이 상승합니다. 이제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죠. 이런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양식이 바로 판소리입니다. 판소리에 사투리나 비속어, 언어유희 등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판소리를 백성들만 즐긴 것은 아닙니다. 양반들도 이야기와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귀를 빼앗기게 됩니다. 비속어나 사투리만으로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워졌고, 양반들의 취향에 맡는 한자어나 고사를 인용하기 시작합니다. 비속어와 사투리, 한자어와 고사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가 판소리에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외에도 판소리의 특징에는 장면의 극대화가 있습니다. 장면의 극대화는 줄거리 전개와 관련이 없으나 관객들이 좋아하는 장면을 길게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춘향가를 보면, 어사가 출두하는 장면이 유독 길게 나타납니다. 이 부분은 백성들을 괴롭히던 변 사또가 벌을 받는 장면으로 소위 ‘사이다’를 마시는 장면입니다. 판소리에 이런 장면의 극대화가 나타나는 이유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실시간으로 공연되는 문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변 사또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지배층을 상징합니다. 관객의 대다수가 평민임을 감안한다면, 어사또가 변사또를 응징하는 장면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렇기에 이 장면은 전체 줄거리와는 관련 없으나 극의 흥미를 높이는 데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공연하는 창자는 관객의 반응이 좋을수록 더 인정받았습니다. 장면의 극대화는 공연예술이라는 점, 주요 관객이 평민이었다는 점에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수궁가의 한 대목인 범 내려온다를 살펴보고, 판소리의 특징을 알아봤습니다. 글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판소리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글을 다 읽은 후에 다른 특징들도 살펴보며 심화 학습하기를 바랍니다. 또 이날치 밴드와 판소리의 범 내려온다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며 우리 문화가 지닌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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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효정
이지수능교육 국어영역 실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