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뜨거워지면서 슬슬 1학기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부터 2학기 개학하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겠죠? 탐구 과목 공부에 치중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논술 학원을 다니는 분도 있을 텐데, 수시를 준비하는 입시생이라면 여름방학 때 꼭 해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입니다.
여름방학은 자소서를 쓰기에 최적의 시기입니다. 스스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시간이 비교적 많이 나며, 이쯤 되면 어떤 대학의 어느 전공으로 지원할지 대부분 결정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생활기록부 내용을 바탕으로 자소서를 써야 하는데, 생활기록부 작성이 거의 완료된 시점이기도 합니다. 다만 여름방학 때 초안을 완성해놓기는 해야 하지만, 이것이 완성본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여름방학 때 자소서를 끝내겠다는 강박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서류접수 제출 기한 1시간 전까지도 수정할 것이 있는 지 들여다봐야하는 것이 자소서입니다.
자소서를 쓰려고 시도해보지만 자신이 한 활동 중에서 써먹을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여겨지는 경험을 해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혹은 앞으로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여러 번 그랬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포장하고자 약간의 과장이나 거짓말을 보태어 자소서를 쓰면서, 자조적으로 ‘자소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죠. 그럼에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자소서는 자소서라 할 수 없습니다. 삶의 자세를 담는다는 생각으로 써야 하죠. 만약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할지를 아직 모르겠다고 한다면, 자소서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것들을 찾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소서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했던 어떤 활동들을 활용할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생활기록부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겠죠. 자소서에 어떤 활동들을 언급할지 결정했다면, 그 활동에서 의미를 뽑아내야 합니다. 단순히 언제, 어디서, 무엇을, 누구와, 했는지를 적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 활동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게 아쉬웠는지, 그 경험을 발판으로 차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 자신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을 써야하는 2번 문항에 대해 제가 썼던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당시 만들었던 학교축제 홍보앱. 퀄리티가 좋지 않다...)
생활기록부는 객관적인 학습의 역사입니다. 반면 자소서는 주관적인 기록으로, 하나의 일관적인 흐름, 또는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활동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 지를 보여줄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학업에 기울인 노력 또는 학습 경험에 대해 쓰라고 하는 1번 문항에 대해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작성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진화론에 관심을 가짐.=> 진화 과정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짐. => 간단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결과를 관찰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음. => 코딩과 다른 과목을 접목시켜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에 재미를 느낌 => 컴퓨터과학과 기계학습을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연구자가 되겠다고 함.
이처럼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합니다. ‘난 이런 게 전혀 없는데’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시지 마세요. 이야기는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서로 관련 있는 몇 가지 활동들, 그 활동으로 느낀 점과 배운 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함께 배치하는 것으로도 훌륭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야기 만들기까지 성공했고 아무리 봐도 자신의 자소서가 합격 감이다, 라고 생각이 들더라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친구들,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의 객관적인 의견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쓴 내 자소서를 내가 볼 때는 맹점이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읽고 나서 조언을 해달라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수록 좋고, 자소서 컨설팅을 받아도 좋습니다. 저는 자소서를 다 쓴 이후에 ‘올댓수시’에서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자소서를 수정하면서 도움 받았던 곳)
조언을 받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럴듯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면 받아들이고 자소서를 고쳐야죠. 이 때 고치는 것이 쉼표 하나, 단어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글의 구조를 갈아엎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올댓수시 선생님께서 조언해주신 대로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 배우고 느낀 점’을 써야 하는 3번 문항에서 활동 하나를 아예 빼버리고 다른 활동들의 의미를 조금 더 강조했습니다. 이로써 훨씬 말끔한 자소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소서의 1, 2, 3번 문항은 모든 학교 공통이지만 4번 문항은 학교마다 다른 것 아시죠? 특별히 제가 썼던 고려대학교 4번 문항과 서울대학교 4번 문항의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울대학교 4번 문항: 가장 큰 영향을 준 책들 3권에 대해 쓰세요.
(서울대학교 4번 문항에 넣었던 책들. 원래 빌려서 읽었었는데 자소서 쓰기 전에 모두 샀다. 하나같이 두꺼운 책들뿐...)
이 책의 저자처럼 독창적인 책을 쓸 수 있는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바람과,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이고 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슴 속에 남았다.
<마스터 알고리즘 – 페드로 도밍고스>
내가 주로 알고 있던 신경망 기반 인공지능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인공지능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떠한 종류의 지식이라도 학습할 수 있는 범용 알고리즘을 뜻하는 ‘마스터 알고리즘’을 개발하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과소평가되었다 – 제프 콜빈>
인공지능이 발전함에도 공감능력과 인간관계를 다루는 직업은 앞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적인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으며, 앞으로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빼앗는 쪽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존에 없었던 산업을 만들어서 새 일자리를 만드는 쪽, 더 나아가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늘려서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려대학교 4번 문항: 지원 동기 및 지원자를 선발해야 하는 이유를 쓰세요.
‘사피엔스’, ‘우연과 필연’을 읽었을 때 감명을 받고 저자와 같이 명민한 사고와 탐구를 하는 지식인을 동경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지식인 즉 컴퓨터과학자가 되고자 했다. 문예교지부에서 딥러닝을 자세히 소개하는 기사를 작성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스터 알고리즘’을 읽고 범용 학습 알고리즘 개념에 흥미를 느껴 앞으로 그것을 개발할 목표를 얻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에 지원했다.
자율동아리 ‘오토마타’를 창설해서 2년간 기장을 맡으면서 학생주도적인 학습활동을 이끌어 왔다. 이처럼 스스로의 길을 계획해온 본인은 ‘개척하는 지성’이라는 말에 걸맞은 인재가 될 것이라 자신한다.
뇌인지과학 융합전공을 하여 두뇌의 작동 방식을 신경망 알고리즘에 적용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여 창의적인 연구를 하는 컴퓨터과학자이자 동시에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가 될 것이다.
자소서는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다양한 면모 중에서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이 원하는 모습을 선별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소서의 전체 내용을 허물었다가 다시 세우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최선의 결과물을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면 모두 멋있는 자소서를 작성하고, 좋은 결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