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3월이지만, 비가 온 후 날씨가 다시 쌀쌀해졌습니다. 이럴 때는 누군가가 도술을 써서 추위를 몰아내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능력을 얻고 싶나요? 전 가고자 하는 곳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순간 이동 능력과 시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얻고 싶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활용하여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을 마음껏 다녀올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고전소설을 읽다 보면, 이렇듯 기이한 능력을 발휘하여 적군을 물리치거나 사랑을 쟁취하는 등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설들을 흔히 영웅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우리가 즐겨보는 마블 영화 속 주인공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국가 간 전쟁이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면 영웅 군담소설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여러 영웅 소설 중에서도 수능특강에 들어 있는 「박씨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씨전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가정 내에서의 일을 다루고, 후반부는 용골대 등 청나라 세력과의 싸움이 주를 이룹니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르는 기준은 박씨의 용모 변화에 있습니다. 전반부는 박씨와 이시백의 결혼생활이 주를 이룹니다. 이시백은 박씨와 결혼했으나 그녀의 추한 용모를 보고 크게 실망합니다. 이에 박씨는 피화당을 지어 외롭게 지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말을 키워 시댁의 재산을 늘린다거나, 이시백을 장원급제할 수 있게 돕는 등 신통력을 발휘해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액운이 다한 박씨는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모합니다. 그러자 이시백은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며 박씨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이후 박씨는 별을 보며 청나라가 조선을 쳐들어올 것이라 예언하지만, 조정에서는 아녀자의 말이라며 이를 무시합니다. 그 후 박씨의 말대로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게 되고, 조선은 청나라에 크게 패하게 됩니다. 한편 용골대의 동생 용울대는 박씨의 도술로 죽음을 맞이하고, 용골대는 이에 복수하고자 피화당을 찾아갑니다. 박씨는 도술을 부려 용골대를 무찌르고, 그는 겨우 청나라로 돌아가게 되죠. 이후 청나라를 물리친 공으로 박씨는 정렬부인의 칭호를 받게 되고, 이시백과 행복한 여생을 보내며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조선은 남성 사대부가 다스리던 사회였는데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여 적군을 물리친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요?
조선 중기로 넘어가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때 양반들은 백성들을 보살피기보다는 개인의 안위와 대의명분을 따지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당시 동아시아 세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것은 청나라였으나, 조선에서는 이들을 오랑캐라 칭하며 배척하였습니다. 명나라를 멸망시킬 만큼 군사력을 갖춘 청나라. 이를 무시한 조선은 결국 청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고,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으면서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이때 소현세자와 빈궁, 봉림대군과 부인, 청나라를 배척하자고 주장했던 신하들이 볼모로 끌려갑니다. 「박씨전」에도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나타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용골대는 여자들과, 왕비, 세자 삼 형제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지만 박씨의 활약으로 용골대는 왕비는 조선에 둔 채 떠나게 됩니다. 그동안 오랑캐라 여겼던 청나라에게 무참히 짓밟힌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청나라를 향한 분노의 마음과 함께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양반들을 향한 원망의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박씨전」을 비롯해 「유충렬전」, 「임장군전」 등 영웅 소설이 다수 등장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감정들을 풀어내고자 했던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히어로물 영화를 보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없애버리고자 하는 대상 혹은 절대악으로 형상화된 대상을 누군가 대신 무찔러줌으로써 가슴속에 있던 여러 감정들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여성이 주인공인 영웅 소설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사회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었던 사회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더라도 왕비의 이름은 성씨로만 남겨져 있습니다. 박씨도 그 이름은 나오지 않고 성씨로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녀가 주도적으로 적군을 물리치는 모습은 꽤나 파격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씨의 활약은 피화당, 즉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데 그쳤다는 데서 한계가 있습니다. 저에게 만약 박씨와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쳐들어오는 청나라 군대를 단숨에 무찔러 버렸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박씨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은 누구인가요? 꼭 초능력이나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자신의 희생하는 사람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스포츠 선수들. 또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영웅입니다.